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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와 다도 – 3탄: 리큐가 사랑한 찻사발, 조선의 이도다완

고미술 및 골동품 이야기

by 골동나라 2025. 11. 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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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노 리큐가 완성한 다도의 세계는 단순한 예법을 넘어 마음의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다기 중에서도, 유난히 애정을 쏟았던 찻사발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에서 건너온 ‘이도차완(井戸茶碗)’입니다.

정호다완 이라고도 칭하는 이도다완은 본래 조선의 평범한 그릇이었습니다. 농부나 서민이 밥을 담고 물을 마시던 일상의 사발이었죠. 그러나 일본에 건너간 후, 센 노 리큐의 손에 들어가면서 그 소박한 그릇은 한 시대의 미학을 상징하는 예술품이 되었습니다.

이도다완은 15세기에서 16세기 무렵 조선에서 만들어진 분청사기 계열의 사발로, 거친 흙의 질감과 회청색 혹은 담갈색 유약이 특징입니다. 입구가 약간 넓고 두텁게 만들어져 있으며, 구울 때 생긴 미세한 갈라짐과 유약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선, 일정하지 않은 색, 약간 기울어진 형태.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인간적인 따뜻함과 손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에서 그저 소박한 그릇이었던 이도다완은 일본으로 건너가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16세기 일본은 다도가 성행하던 시기였고, 무역과 외교를 통해 조선의 도자기들이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중국의 화려한 백자보다도 조선의 사발은 훨씬 단순하고 투박했지만, 바로 그 점이 일본의 다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센 노 리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던 ‘와비(侘び)’의 미를 발견했습니다. 인위적 완벽함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불균형, 꾸밈없는 정직함, 그리고 소박함이 주는 고요한 아름다움. 리큐에게 이도차완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다도의 정신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징이었습니다.

리큐는 말했습니다. “이도차완의 거칠고 담백한 표면은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그에게 이 그릇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의 완성체였습니다.

이도차완을 손에 쥐면 묘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입술에 닿는 두툼한 곡선은 부드럽고, 빛의 각도에 따라 유약의 색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리큐는 이런 그릇을 통해 ‘완벽함 속의 공허’가 아닌, ‘불완전함 속의 충만’을 보았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한 이도차완은 일본 국보로 지정된 ‘기이노이도(喜左衛門井戸)’입니다. 넓은 입, 두꺼운 가장자리, 은은한 회청빛의 내면은 마치 오래된 산사의 고요함을 닮았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찻사발은, 리큐가 말한 ‘와비’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도차완의 인기가 높아지자 일본 각지에서는 이를 본떠 조선식 사발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 도공들이 현지에 정착해 도자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들의 기술은 ‘카라쓰야키(唐津焼)’, ‘아리타야키(有田焼)’, ‘사츠마야키(薩摩焼)’ 등으로 이어지며 일본 도자기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일본 도자 문화의 근간에는 조선의 흙과 불,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 녹아 있습니다.

센 노 리큐에게 다도란 결국 마음의 수양이자 자연과의 합일이었습니다. 그는 “차를 달이고, 마시고, 치우는 것. 그 안에 모든 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도차완은 바로 그 길 위에서, 인공의 미보다 자연의 진실함을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흙의 질감, 유약의 흐름, 불의 흔적. 그 모든 것은 곧 삶의 자취이자 미의 근원이었습니다.

조선의 평범한 그릇이 일본에서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것. 그 안에는 시대를 초월한 미의 감각과 두 문화가 서로 공명한 순간이 있습니다. 리큐가 사랑한 찻사발, 이도차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정한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진심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다도의 세계는 단지 차를 마시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자연, 그리고 마음을 잇는 조용한 예술입니다.

 

 

일본 이도차완

 

정호다완

 

이도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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